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떠나는 게 과연 사랑일까요? 이런 엿같은 사랑 9화를 보면서 저는 계속 이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기억을 되찾은 은새가 드디어 직접 움직이기 시작하고, 태하는 피를 흘리면서도 또 누군가를 지키려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태하가 정화를 죽였다는 장면은 9화 내내 쌓아온 긴장감을 한 번에 터뜨렸습니다.

백상길의 과거, 악인에게도 뿌리가 있었다
9화를 시작하자마자 1991년 복싱 장면이 나왔을 때 솔직히 좀 당황했습니다. 8화 마지막에 태하가 칼에 찔렸으니 당연히 그다음 장면이 이어질 줄 알았거든요.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현재가 아니라 30년 넘게 전의 이야기였습니다. 이 선택이 처음에는 흐름을 끊는 것처럼 느껴졌는데, 보다 보니 오히려 백상길이라는 인물의 서사적 맥락(narrative context), 즉 한 캐릭터가 왜 지금 이런 사람이 됐는지를 보여주는 서사의 배경을 먼저 깔아 두는 방식이었다는 게 이해됐습니다.
1991년의 백상길은 링 위에서 유리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코치가 흰 수건을 던졌고, 알고 보니 글러브 안에 무언가를 숨겨두고 있었습니다. 복싱에서 흰 수건을 던지는 행위는 기권(TKO, Technical Knockout의 전 단계)을 의미하는 코너 스톱(corner stop)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여기서 코너 스톱이란 선수의 코치나 트레이너가 경기를 더 이상 진행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심판에게 전달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런데 유리한 상황에서 수건을 던졌다는 것 자체가 이미 뭔가 숨겨진 사정이 있다는 걸 암시했죠. 글러브 안에 넣어둔 이물질이 발각될 위험이 생겼고, 그래서 이긴 척하기보다 차라리 끝내버린 것이라는 해석이 자연스럽게 따라왔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백상길이 스포츠맨십(sportsmanship), 즉 경기에서 정정당당하게 이기고 지는 것을 스스로 포기한 사람이라는 점이 이미 어린 시절부터 형성됐다는 겁니다. 스포츠맨십이란 승패보다 과정의 공정함을 중요하게 여기는 태도를 말하는데, 백상길은 그 반대편에서 살아온 사람이었습니다. 오히려 결과를 위해 수단을 숨기고, 규칙의 빈틈을 이용하는 것이 그의 방식이었죠. 이 장면 하나로 지금의 백상길이 왜 저런 사람인지가 설명됐습니다.
홍 관장이 백상길 앞에서 무릎을 꿇는 장면도 마음이 많이 불편했습니다. 한때 자신이 가르친 제자에게 무릎을 꿇어야 하는 상황이라는 것 자체가 캐릭터 관계의 역전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백상길이 홍 관장의 제자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태하와의 연결고리도 단순한 현재의 악연이 아니라 오랫동안 이어진 인연의 고리가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백상길 같은 사람이 그 모습에 감동할 리 없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에, 홍 관장이 저 행동을 해봤자 돌아오는 건 없겠다 싶어서 더 씁쓸했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악인의 과거를 보여주는 것은 캐릭터 빌딩(character building), 즉 등장인물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현재의 성격과 가치관을 갖게 됐는지를 구축하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제 경험상 이런 식으로 악역의 과거를 계속 보여주다 보면 어느 순간 악역이 예측 가능해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이 드라마도 그 경계에 조금씩 다가가고 있는 것 같아서 앞으로의 전개가 조금 걱정되기도 합니다.
- 백상길은 복싱 시절부터 정정당당한 방식보다 결과를 위해 수단을 택하는 인물이었음
- 홍 관장과의 사제 관계가 밝혀지며 태하와의 연결고리가 더 깊어졌음
- 악인의 과거를 보여주는 방식은 좋았지만, 반복될 경우 예측 가능한 악역이 될 위험이 있음
- 노트북을 빼앗긴 상황에서도 결정적 퍼즐 하나를 풀지 못하고 있는 백상길의 모습이 긴장감을 유지시킴
은새의 기억 회복, 그리고 태하와 정화의 충격적 결말
기억을 되찾은 은새가 태하 곁을 그냥 지나쳐 어딘가로 달려가는 장면에서 저는 순간 멈췄습니다. '지금 이게 진짜 떠나는 건가?' 싶었거든요. 그런데 달려간 곳이 증거를 찾기 위한 장소였다는 게 확인되면서 이제 은새는 보호받기만 하는 캐릭터가 아니라는 걸 몸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는 게 이해됐습니다. 이 변화가 9화에서 제가 가장 좋았던 부분입니다.
드라마에서 기억 상실(amnesia)은 스토리텔링의 장치로 자주 사용됩니다. 여기서 기억 상실이란 외상이나 심리적 충격으로 인해 특정 기간의 기억이 사라지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이 드라마에서는 은새가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태하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전반부를 이끌어왔습니다. 그런데 기억이 돌아오면서 은새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니까 두 사람의 관계가 훨씬 입체적으로 바뀌었습니다. 계속 보호해주는 구도에서 서로가 서로를 지키는 방향으로 이동하고 있는 거죠.
그런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은새가 태하에게 '조폭이 된 너와는 같이 살 수 없다'고 말하는 장면에서 태하와 똑같은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태하가 은새를 지키기 위해 일부러 차갑게 굴었던 것처럼, 은새 역시 태하를 위험에서 떼어놓기 위해 스스로 아픈 말을 선택했습니다. 심리학적으로 이런 행동 패턴은 희생적 분리(protective distancing)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거리를 인위적으로 만들어 상대를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는 심리적 전략을 말합니다. 문제는 이 방식이 실제로는 상대방에게 버림받았다는 감각을 주기 때문에 오히려 관계를 더 복잡하게 만든다는 점입니다.
효진이의 거짓말이 단순한 은폐가 아니라 나름의 복수였다는 사실, 정록이 실제로 배신자가 아니었다는 반전도 이번 화에서 중요했습니다. 제 경험상 이런 식으로 시청자가 의심하게 만들었다가 뒤집는 방식은 잘 먹히는데, 정록의 경우는 저도 꽤 오래 의심했기 때문에 진짜 편이었다는 게 밝혀졌을 때 괜히 미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 드라마는 인물들에게 명확한 선악을 붙이지 않으면서 각자의 이유를 가지고 움직이게 만드는 방식이 꽤 일관적입니다. 드라마 서사론에서는 이를 도덕적 모호성(moral ambiguity), 즉 등장인물의 행동이 선과 악으로 단순하게 나뉘지 않는 서사 구조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마지막, 태하가 정화를 죽였다는 장면은 9화의 가장 큰 충격이었습니다. 저는 아직 이 장면을 단순히 '태하가 사람을 죽였다'라고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태하라는 인물이 보여온 행동을 놓고 보면, 아무 맥락 없이 누군가를 죽이는 사람과는 거리가 멀었거든요. 오히려 어떤 상황에 몰렸는지, 누구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는지가 다음 화에서 제대로 설명되지 않으면 지금까지 쌓아온 태하의 캐릭터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만약 충격을 위한 반전으로만 사용됐다면 조금 실망할 것 같습니다. 이미 태하에게 감정이 많이 실렸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이런 엿같은 사랑 9화에서 백상길이 홍 관장 제자였다는 게 진짜인가요?
A. 네, 9화에서 1991년 과거 장면을 통해 백상길이 홍 관장 밑에서 복싱을 배웠다는 사실이 직접 등장합니다. 이 장면을 보면서 태하와 백상길의 악연이 단순히 현재의 이야기가 아니라 훨씬 오래된 연결고리에서 비롯됐다는 게 느껴졌습니다.
Q. 은새가 기억을 되찾은 게 9화인가요?
A. 정확하게는 8화와 9화에 걸쳐 기억을 되찾는 과정이 이어지고, 9화에서는 기억을 회복한 은새가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는 모습이 나옵니다. 제가 직접 보면서 느낀 건, 기억을 되찾은 것 자체보다 은새가 이제 더 이상 보호받기만 하지 않는다는 태도의 변화가 훨씬 인상적이었습니다.
Q. 태하가 정말 정화를 죽인 건가요?
A. 9화 마지막에 태하가 정화를 죽였다는 장면이 나오긴 하지만, 어떤 맥락에서 그 선택을 하게 됐는지는 아직 충분히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태하가 보여온 행동 방식을 생각하면 단순히 나쁜 의도로 한 행동인지,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다음 화를 봐야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정록이 배신자 아닌 게 9화에서 밝혀지나요?
A. 맞습니다. 8화에서 밀항 정보가 새어나가면서 정록이 가장 의심스러운 인물처럼 보였는데, 9화에서 정록이 실제로 태하 편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저도 꽤 오래 의심했던 인물이라 진실을 알게 됐을 때 묘하게 미안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결론
9화는 정신없이 많은 사건이 한 회에 몰렸지만, 그만큼 다음 화를 바로 눌러야겠다는 힘은 분명히 있었습니다. 기억을 되찾은 은새가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점, 백상길의 과거가 하나씩 드러나며 악인의 뿌리가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은 좋았습니다. 다만 사건이 너무 빠르게 쌓이다 보니 태하와 은새 사이의 감정선이 충분히 숨 쉬지 못하고 지나가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드라마 서사에서 감정선이 묻히는 것은 아쉬운 부분이라 생각합니다.
넷플릭스 드라마는 한 회의 완결성보다 시즌 전체의 흐름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출처: Netflix). 이런 구조에서 9화는 클라이맥스로 향하는 징검다리 역할을 하는 회차라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마지막까지 뿌려놓은 떡밥들, 즉 노트북 안의 정보, 백상길과 태하의 완전한 대결, 정화의 죽음의 진짜 맥락이 어떻게 회수될지가 이 드라마의 완성도를 결정할 것 같습니다. 드라마 비평가들 사이에서도 복수극 장르의 완성도는 복선 회수의 밀도에 달려 있다는 시각이 많습니다(출처: 한국문화산업교류재단). 제 경험상 이런 드라마는 마지막 두 회에서 모든 게 결정됩니다. 억지 반전 없이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제대로 매듭짓는 결말을 기대하고 있습니다.